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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독립 만세! 대한 독립 만세!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가슴을 울리는 목소리가 대한민국 하늘을 가득 메웠습니다. 전 민족이 1919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항해 대규모 독립운동을 펼친 3·1운동입니다.

  

일본군의 총칼에도 사람들의 만세 행렬은 멈추지 않았고, 결국 그렇게 시작된 3·1운동은 전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이는 조국을 떠나 만주에서 외롭게 투쟁하던 독립군을 고무시켰는데요. 본국에서 많은 이들이 국경을 넘어 독립군에 가담하였고,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활약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독립군들은 어떤 무기로 일본과 맞서 싸웠을까요? 


나라를 잃은 상황 속에서 독립군은 소총 하나조차 지원받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이렇게 최악의 환경 속에서, 오직 대한 독립만을 위해 사투를 벌인 그 이름, ‘독립군’. 이번 시간에는 우리 독립군이 어떤 무기를 사용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독일제, 소련제, 미국제 등 다양한 무기를 사용한 독립군



<청산리 전투 승리 직후의 북로군정서. 가운데 앉은 분이 김좌진>




<출처: 대교학습백과>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였습니다. 전 세계는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혼란기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의 혼란기를 틈타 흘러나온 무기로 우리 독립군은 보다 충실하게 무장할 수 있게 됐습니다. 특히 본국 귀환을 위해 블라디보스토크에 와있던 체코군단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당시 이들은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에 본국이 있는 유럽으로 귀환하려고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온 다음 배를 타고 미국을 거쳐 유럽으로 가는 장거리 이동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배를 타려면 무장을 해제해야 했습니다. 바로 이 때, 체코 군단은 우리 독립군 단체인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에 접촉하여 보유 무기 상당수를 매각하였습니다.



<무장 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체코 군단의 모습. 이들로부터 구입한 다양한 무기로 독립군은 연이은 승리를 거두었다.>



덕분에 북로군정서는 1920년 당시 탄약 24만 발, 권총 150정, 수류탄 780발, 기관총 7문, 소총 320정 ~ 1,800정, 그리고 제식 미상의 포 2문 등을 확보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일본군을 크게 격파한 청산리 전투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지요. 그럼 대표적으로 어떤 무기가 사용됐는지 자세히 살펴볼까요?



<영화 ‘암살’에서 안옥윤이 일본군을 저격하는 모습(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혹시 독립군 활동을 주요하게 다룬 영화 ‘암살’에서, 전지현이 열연한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을 기억하시나요? 

  

영화 속에서는 안옥윤이 총으로 일본군들을 잇달아 저격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요. 이때 안옥윤의 손에 들린 소총이 바로, 실제 독립군이 사용한 러시아제 소총 M1891 ‘모신나강(Mosin Nagant)’입니다. 


<명중률 99%' 러시아 저격 영웅이 쓰던 전설의 소총, 모신나강(출처: 유용원의 군사세계)>



일제 강점기 만주지역에서 활동한 독립군 무기를 본격적으로 조명한 박환 수원대 교수의 최근 논문 ‘3·1운동 직후 만주지역 독립군과 무기’에 따르면, 소총으로는 안옥윤이 썼던 ‘모신나강’이 가장 많았다고 하네요~





그 밖에 독립군이 쓰던 소총은 독일, 러시아, 프랑스, 일본, 미국제 등을 사용했는데요. 따라서 독립군은 제식무기가 통일되어야 하는 대규모의 조직적인 전투는 수행이 어려웠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독립군이 가장 많이 가지고 있던 무기, 권총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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